인물정보

검색

송은헌(宋銀憲)

장성공파

소개

송은헌

일제 식민통치에 불복하다 3・1운동 때 체포되어 옥고를 치룬 송은헌(宋銀憲)

강와(剛窩) 송은헌(宋銀憲)은 세한재 시도의 10대손으로 1876년 11월 4일 충북 보은군 강신리 외가에서 부친 병택과 모 어순이(魚順伊) 사이에서 출생하였다.

젊어서 극재(克齋) 어윤적과 금계(錦溪) 이은원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학문이 정밀하고 깊으며 항상 홀로 있을 때도 도리에 어그러짐이 없이 삼가고, 항상 조심하고 신중을 기해 행동했다고 한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의 비보를 전해 듣고 비분강개하여 ‘復讐保形(복수보형)’의 4자를 머리맡에 걸어두고 기회오기만을 기다렸다. 을미개혁으로 단발령까지 강제로 시행되자 ‘討逆復讐(토역복수)를 부르짖고 의암 유인석 의병진에 300냥의 군자금을 제공하고 이후에도 수십 차례에 걸쳐 군자금을 제공하였다.

 

을사늑약의 소식을 듣고 5적의 처단을 위해 유림의 궐기를 호소하고 경술국치 후, 두문불출하면서 학문에 정진하며 저술로 분을 삭이며 일제통치에 불복하였다.

유인석 의병장을 따라 만주로 망명하려 하였으나 스승 어윤적이 때가 좋지 않다고 극구 만류함에 기회를 엿보고 기다렸다. 스승 금계 이은원의 소상(小喪)때 고한 제문에 ‘亡國爲至痛(망국위지통)’ 문구를 사용하여 일제경찰에 잡혀 고문을 당하면서도 굴복치 않았다.

1919년 3·1운동 때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으나 너무도 의연하게 일제와 맞섰다. 옥중에서도 망국의 한과 일본에 대한 적개심을 시(詩)로 노래한 “오늘날 옥중에서 북쪽을 바라보며 홀로 작은 충성을 바치며 웁니다,”라는 옥중시(獄中詩)가 있다.

강와 송선생 강도유허비 (전면)

(후면) 충북 보은군 마로면